K
Kang, Gunyoung / 강건영
Partner / 소장
k@a-d-o.kr
표현의 문제와 사고의 범주. 그 두 가지가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각만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없는, 감각 없이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진심으로 고유하다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평균이나 일반의 영역이 아닌 그 고유함의 차원에 우주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The physical substance of architecture and the thinking that creates it.
I don’t think the two are different matter.
It cannot be created with the senses alone, and cannot be created without the senses.
I believe the universality exists in the dimension of its originality, not in the realm of the generality.
irrelevant correlation
상관없는 상관관계
Autonomy
건축은 반드시 어떤 조건 안에서 파생되지만, 건축가는 반드시 조건 외의 어떤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율성의 모든 부분이 자의적이거나 임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건축가의 자유가 오히려 건물의 본질적인 부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물이라는 지어진, 지어질 환경을 다른 상위 개념의 부속품으로 축소시키려는 시도는 건물이 본디 해야 할 역할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의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을 조건에 의해 파생된, 합리적인, 논리적이거나 전략적인 사고에 기반한 생각과 판단으로 귀결시키려는 시도는 때때로 건축이 해야 할 근원적인 역할을 축소하거나 왜곡시킵니다. 건축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도시적인 시스템은 아니며, 전략, 사용에 대한 단순한 예측, 기능이라는 환원적 이해에 의거한 시스템, 정책이나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건물이라는 존재가 사회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사회문제를 더 ‘기능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건물은 건물입니다.
자율성
Architecture must be derived within certain conditions, but the architect always have some freedom without the conditions. I don’t think every aspect of that freedom is arbitrary or random. I think the freedom of the architect can make an essential part of the building.
Attempts to reduce the built and to-be-built environment of buildings to parts of other higher concepts prevent buildings from fulfilling their intended role. Attempts to reduce all parts of a project to thoughts and judgments based on rational, logical, or strategic thinking derived from conditions sometimes reduce or distort the fundamental role that architecture should fulfill. All the parts that make up architecture are not urban systems, diagrams, policies or scenarios based on strategies, mere predictions of usage, and a reductive understanding of function. A building can contribute to society, but it is not a being that has to solve social problems more ‘functionally’. A building is a building.
저는 건물이 아닙니다.
더욱이, 건물은 작가라는 개인성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표현 수단도 아닙니다.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도 아닙니다. 건물은 존재하는 그 스스로의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이라는 지어진, 또는 지어질 환경은 스스로의 물리가 있습니다.
한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 발전해 온 자신의 역사와, 계보, 원칙과,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역사와 계보와 원칙과 규칙과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물에 대한 논의를 작가 개인의 취향으로 축소시키는 많은 회의적인 논의들을 거부합니다.
건축가와 건물은 각자 스스로 존재합니다. 그런 면에서, 건물은 개인적인 발명품이나 마술사의 도구가 아닙니다.
건물
I am not A building.
Moreover, the building is not an accessory of the artist’s personality. Nor is it a means of expression. It is not a medium for conveying any content. Buildings exist on their own.
Therefore, the built or to-be-built environment called a building has its own physics.
It has its own history, genealogy, principles, rules, and order that have developed over a much longer period of single human history. I love to talk about its history and genealogy and principles and rules and order.
We reject many skeptical discussions that reduce the discussion about buildings to the artist’s personal taste. Architects and buildings exist on their own. In that respect, the building is not a personal invention or a magician’s tool.
Contradition
언어와 논리에서는 어떤 것들이 앞과 뒤가 맞지 않을 때,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존재가 공존할 때, 이를 모순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물체의 세계에서는 사실 이 구분점들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물은 동시에 차가울 수도, 동시에 따듯할 수도 있습니다.
건물은 나름의 논리와, 평행하게 공존하는 모순이 있습니다.
건물에는 이해 가능한 부분과 이해 불가능한 부분이 공존합니다.
건물을 인간과 분리되는 타자성을 지닌 존재로 만들려고 합니다.
모순
In language and logic, when certain things do not fit in front and back, when two existences that oppose each other coexist, it is called contradictory. But in the world of objects, these distinctions are not really clear. It can’t be clear. Some things can be cold at the same time and warm at the same time.
Buildings have their own logic and contradictions that coexist in parallel.
The understandable part and the incomprehensible part coexist in the building.
I am trying to make the building a being with otherness that is separate from humans.
건물은 수많은 세부 부분들로 이루어집니다. 두 개의 벽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따라서 연결된 하나의 벽으로, 또는 직각의 매스로, 또는 벤딩 된 하나의 벽으로, 또는 두 개의 개별적 개성을 가진 두 개의 벽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테일은 개별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A와 B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관계적 존재입니다. 이는 건물의 구축-구조-표현을 연결하는 텍토닉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최근의 작업은 이 세부 부분과 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려고 합니다. 많은 경우는 건물의 전체상과 무의식적으로 일치시켰던 부분인 디테일을 의식적으로 건물 전체와 분리된 자율적인 존재로서 디자인하기도 합니다. 때때로는 보이지 않게 노력했던 부분을 오히려 보이게, 눈에 띄게, 독자적인 개성을 표현하려 합니다. 때때로는 하이 엔드가 아닌 원시성을 추구합니다. 건물의 세부 부분에도 자율성을 추구합니다.
디테일
A building is made up of numerous detailed parts. Depending on how two walls meet, they can turn into one connected wall, or a right-angled mass, or one bended wall, or two walls with two separate personalities. In that sense, detail is an individual existence and at the same time a relational existence that defines the existence of A and B. This is also a very important notion of tectonic culture, which connects construction-structure-expression of a building.
Recently I’ve been trying to connect this detail with the whole in a different way. In many cases, the detail, which is a part that has been unconsciously matched with the overall image of the building, is consciously designed as an autonomous existence separate from the whole building. Sometimes, I try to express in a way that makes the invisible part visible and conspicuous. Sometimes I try to make detail primitive, not highly ended. I seek autonomy even in the details of the building.
Function
건축에서 기능이라는 말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이고 환원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문제는 기능적이라는 말이 일종의 의문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가치처럼 이야기되는 순간입니다.
어쩌면 비슷한 단어로는 ‘연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능주의라고 환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모던의 거장인 르 꼬르뷔제와 미스 반 데 로에 조차도 건축의 기능에 대한 의견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 명은 사람이 살기 위한 기계라고, 다른 한 명은 구축적인 합리성이라고 이야기했을지 모릅니다. 한쪽은 용도나 사용에 기반한 기능, 한쪽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구조의 합리성을.
어떤 면에서 역사적으로 건물이 수행해 왔던 굉장히 단순한 의무가 있고, 한편으로는 건물이 더 중요한 사회적 작동을 하길 기대하는, hyper-functional한 접근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강조해서 건물이 더 사회적이게 보이게 하려는 시도들은 지금도 건축의 주류 중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그 수많은 시도들을 봐 왔고, 저 자신도 그 시도를 해왔던 적이 있지만, 그런 차원에서 건물이 더 복잡하게 기능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건물이 더 사회적이 된다는 것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건물이 사회에 기여할 수 없거나, 건물의 사회적 역할이 없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건물이 더 기능적이 된다고 해서, 건물이 더 사회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건물이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능
In architecture, the word ‘function’ is used as a broad, inclusive, reductive, and ambiguous concept. The problem is placed in the moment when the word ‘functional’ is talked about as an absolute value that cannot be questioned. Perhaps a word ‘connection’ is similar.
I think that even Le Corbusier and Mies van der Rohe, the masters of modernism, which we can reductively talk about as functionalism, had different opinions about the function of architecture.
Maybe one said that architecture is machine for living, and the other said constructive rationality. One side is the purpose or use-based function, and the other side is the rationality of the structure that makes up the building.
On the one hand, there seems to be a very simple duty that buildings have historically performed, and on the other hand, there seems to be a hyper-functional approach that expects buildings to perform more integrated social operations. Attempts to emphasize this and make the building look more social are still part of the mainstream of architecture.
I have seen many of those attempts, and I myself have tried them, but I have doubts that the more complex and functional evolution of a building makes it more social.
I do not believe that buildings cannot contribute to society or that buildings do not have a social role. The idea is that just because a building becomes more functional does not mean that it evolves more socially. I have doubts about whether that is possible and whether the building can do it.
Gravity
물체적으로도, 그리고 표현적으로도.
건물은 중력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고, 그래야만 합니다.
무중력은 없습니다.
중력 순응적이거나 중력 저항적이거나, 두 가지의 상반된 방향에서도, 중력은 건물이라는 존재의 기반입니다.
중력
Both physically and expressively.
Buildings exist in relation to gravity, and they should.
There is no weightlessness.
Gravity conforming or gravity resisting, or both in opposite directions, Gravity is the foundation of the existence of a building.
Heterogeniusity
유리는 투명하고, 정교하고, 평면적입니다.
이 유리는 불투명하고, 거칠고, 입체적으로 진화됩니다.
콘크리트는 타설적이고, 거칠고, 단단합니다.
이 콘크리트는 조립적이고, 정교하고, 부드럽게 진화됩니다.
스토(도장재)는 인공적이고, 비물질적이고, 표면적입니다.
이 스토는 자연적이고, 물질적이고, 구조적으로 진화됩니다.
본성과 대비되는 방향으로 진화된 각각의 성질은 다시 서로 간 다 방향적인 대비를 만들어 냅니다.
이 건물은 재료의 본성에 반하는 모순들을 의도적으로 같은 선상에 배치해서 다 방향적인 대립관계를 만들고, 그 대립관계들을 통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감각의 풍부함을 만들어 낼 수 있게 계획되었습니다.
이질성
Glass is transparent, delicate, and flat.
This glass evolves to be opaque, rough, and three-dimensional.
Concrete is casted, tough, and hard.
This concrete is prefabricated, refined, and evolves smoothly.
Sto (paint) is artificial, immaterial, and superficial.
This sto evolves naturally, materially, and structurally.
Each of the qualities that have evolved in the direction of contrast with its nature again creates a multidirectional contrast with each other.
This building is designed to create a multi-directed confrontational relationship by intentionally arranging the contradictions against the nature of the material on the same line, and to create an ever-changing richness of senses through the conflicting relationship.
Idea
이성은 의식적인 사고, 직관은 신체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건물을 설계할 때 두 가지 모두 균형 잡히게 사용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경우라고 사고 없이 설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발상, 생각, 계획, 견해, 신념
I think that reason is conscious thinking and intuition is bodily thinking.
When designing a building, try to use both in a balanced way.
In any case, there is no case of making without thinking.
이 건물은 수직적으로 잘게 분절되고 병치됩니다. 그 안에서 개별 수평 요소들은 분절되거나, 변형됩니다. 수직적인 깊이의 차이는 태양의 각도, 방문객의 위치에 따라 두드러지는 요소와 배경이 되는 요소를 사진의 조리개처럼 끊임없이 바꿉니다. 이 조리개는 부분들의 관계도 끊임없이 재정의 합니다. 멀리 있는 것들이 두드러지며 상호 관계되기도 하고, 부분들의 차이가 적어지고 전체가 더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병치
This building is finely segmented and juxtaposed vertically. Within it, the individual horizontal elements are articulated or transformed. The difference in vertical depth constantly changes the prominent and background elements, like the aperture of a photograph, depending on the angle of the sun and the position of the visitor. This aperture also constantly redefines the relationship of the details. Distant things stand out and become interrelated, a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 parts become invisible and the whole stands out more.
건물은 스스로의 물리가 있습니다.
한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 발전해 온 자신의 역사와, 계보, 원칙과,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역사와 계보와 원칙과 규칙과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건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인 견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건축이 지적인 작업이라고 강하게 확신합니다.
지식, 지성
Buildings have their own physics.
It has its own history, genealogy, principles, rules, and order that have developed over a much longer period of a single human history. I love to talk about its history and genealogy and principles and rules and order.
That’s why I love to talk about buildings.
I don’t like to talk about personal opinions. I am strongly convinced that architecture is an intellectual work.
모든 게 급속도로 표준화되고 국제화되는 이 모든 변화들 속에서도,
지금도 건물이 지어지는 방식, 재료, 산업이 각 나라, 문화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보면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각각의 건물이 각자 고유하게 존재했으면 합니다.
그 고유함은 지역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역의 감각
In spite of all these changes where everything is rapidly standardized and internationalized,
Even now, it is sometimes surprising to see how different the way buildings are built, materials, and industries differ from country to country and culture to culture.
I want each building to exist on its own.
Its originality is related to the locality.
제작에 깊게 관여하려고 합니다.
제작에서 분리된 계획은 본질적으로 피상적입니다.
건물이 구체적으로 지어지기 이전에 모든 계획을 도서화 해야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일종의 한계처럼 느껴집니다. 제작 방식 자체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제작
I want to be deeply involved in making.
Plan that is separated from making is essentially superficial.
On the one hand, I feel some kind of limitation that all plans must be documented before the building is concretely built. I often think that I want to design the making process itself.
인공물과 자연의 관계는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중심적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방적이지 않은, 건물이라는 그 자체의 본성과 자연, 인공적인 자연. 인공의 본성.
간단하게, 건물의 본성적인 존재 방식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네이쳐
I believe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man-made objects and nature is essential theme in architecture.
The nature and nature of the building itself, which is not imitative, and the artificial nature. Man-made nature.
Simply, I am exploring the natural way a building exists.
사실은,
건물이 고유하지 않으면, 그 모든 이야기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고 어렵지만 평생에 걸쳐 쌓아 가려고 합니다.
저라는 오리지널리티가 아닌 건물 각자의 오리지널리티를.
오리지널리티
in fact,
If a building isn’t original, I think all those stories mean nothing.
Of course, it’s not easy and it’s difficult, but I’m trying to build it over my lifetime.
Not the originality of me, but the originality of each building.
건물은 당연한 것들의 모임이면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건물을 보고 의문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당연한 연결고리들을 끊어 버리려고 합니다.
“design is invincible, until it fails.”라는 bruce mau의 선언을 즐겨 인용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확하게 정 반대로 생각합니다.
건물은 온전히 시스템이나, 온전히 기능적인 인프라스트럭쳐가 아닙니다.
질문
A building should be a collection of things that are taken for granted and also a collection of things that are not taken for granted.
I want people to look at the building and ask questions.
So sometimes I try to cut off natural connections.
“Design is invincible, until it fails.” There was also a time when I liked to quote bruce mau’s declaration.
Now I think exactly the opposite way.
A building isn’t a fully system and a fully functional infrastructure.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데 이게 더 재밌는 것 같다”는 식의 논의를 제일 싫어합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것은 둘 다 그렇게 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건축가 크리스티안 케레즈의 이야기처럼 지금 시대는 정말 기괴한 건물들조차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을 수 있습니다. 저도 현시대의 임의성에 대해 저항력을 기르려고 합니다.
임의성
“We can do this or we can do that, but this way is more fun.” I hate discussions like this.
The fact that it can be this way and that way means that there is no ‘need’ for both to be that way.
As the architect Cristian Kerez says, even the most bizarre buildings can be built without hard effort. I also try to develop a reluctance to the randomness of the present age.
Skeuomorph
여전히 스마트폰에는 예전의 전화기 모습이 남아있고,
전자책은 페이지가 넘어가는 느낌을 대체합니다.
현대적인 개념인 스큐어모프는 건축의 역사에서도 자주 반복되어 왔습니다.
고전 건축은 석조를 목조처럼 표현하였고,
중세 성당은 석재를 음각하여 목재를 흉내 내었고,
콘크리트는 초창기 조적조를 흉내 내었죠.
근대적인 시공법의 현대적인 재해석, 지역과의 구축적인 연결
명확한 조적성의 무게감, 수평부재의 완결성.
그렇게 익숙한 과거의 모방과 표현을 통해, 지역이 만들어지는 감각이 유지됩니다.
스큐어모프
Smartphones still have the icon of old phones,
E-books replace the feeling of turning pages.
The modern concept of skeuomorph also has been repeated many times in the history of architecture.
Classical architecture expressed stonework like woodwork,
Medieval cathedrals imitated wood by engraving stone,
Early concrete structure imitated masonry.
Reinterpretation of modern construction methods, constructive connection with the region.
Heaviness of masonry, completeness of horizontal members.
In this way, through imitation and representative expression of the past, the sense of creating a region is maintained.
Tectonic, Tactility
지금까지의 많은 프로젝트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이미지적인 화려함을 오랜 기간 동안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희는 나름의 사무소의 기본적인 디자인 방향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기본의 바탕은 주로 텍토닉과 촉각성에 대한 나름의 원칙입니다.
텍토닉, 촉각성
A lot of the projects so far aren’t flashy.
I haven’t pursued fancy image of building for a long time.
During that time, we have developed the design principles of our own office.
The basis of the principles is mainly about tectonics and tactility.
Understanding
이해가 모든 디자인 과정의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프로세스에서는 무엇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어진 것을 이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나 초안조차, 일단 무언가 만들어지면, 만들어진 그 물체 자체의 물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때 아이디어가 잘 구현되었는지 보다, 물체 자체가 어떤 성격인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만들어질 물체인 건물에서 저희는 이해 불가능성을 추구합니다.
저는 100% 이해되는 건물은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건물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가 아닙니다. 건물은 그 자체의 존재입니다.
모든 존재는 100% 합리적이지도, 100% 이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이해
I believe that understanding is the foundation of any design process. In the design process, making something is important, but understanding what is being made is also very important.
Even a simple idea or draft, once something has been created, it is really important to understand the materiality of the object itself. At this time, I try to understand the nature of the object itself rather than whether the idea has been implemented well.
However, in buildings to be built, we seek incomprehensibility.
I don’t want to create a building that 100% understandable.
A building is not a medium for conveying a message. A building is a thing in itself.
All beings are neither 100% rational nor 100% understandable.
Variation
새로움을 과거와의 단절, 부정과 결부시켜 이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난데없이 새로운 것’을 기피합니다.
과거나 기존의 존재, 감각과 연결된 어떤 변화, 또는 변형 또는 변이,
즉, 발전된 형식으로의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변화, 변형, 변이
I try not to understand the newness by associating it with a break with the past and denial.
In a way, I avoid ‘something new out of the blue’.
Any change, or transformation or variation, connected with past or existing existence, senses,
In other words, I pursue newness in a developing something from past.
당연한 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인식이나 지각은 우리의 의식으로 떠오르지 못합니다.
계단 수를 의식하지 못하고도 저희는 매일 계단을 오릅니다.
때때로 사람들의 의식으로 침투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건물의 존재 자체가 지각, 인식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그래서 익숙한 것들에 새로운 접두사를 붙입니다.
이종의
The obvious things are taken for granted.
Awareness or perception of the obvious cannot rise to our consciousness.
We climb stairs every day without even being aware of the number of steps.
Sometimes I want to break into people’s consciousness and ask questions.
I hope that the existence of the building itself can be perceived and recognized.
Sometimes that’s why we put new xeno- on familiar things.
건축은 시간이 걸리는 긴 과정을 포함합니다.
한국에서 작업하는 것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프로젝트의 간격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중소형의 프로젝트가 많고, 그러다 보니 많은 프로젝트가 지어지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많은 프로젝트를 직접 지어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저에게는 제일 큰 성장 동력입니다.
년
Building involves a process that takes kind of long time.
One of the good things about working in Korea is that the project intervals are relatively short.
We have many small and medium-sized projects, and as a result, many projects are built and go through various trials and errors.
Being able to build many projects.
This is the biggest growth driver for me.